바그너(1982)

원제 : Wagner

감독 : 토니 팔머.

출연 : 리차드 버튼.로렌스 올리비에.프랑코 네로.바네사 레드그레이브.

출시사(비디오) : 월드.1988.4.7.

상영시간: 232분.

평생을 살면서 이런 영화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은 큰 행운이 아닐까? 그동안 마니아들에 의해 초희귀작으로 분류되면서 1990년대 PC통신시절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고가로 거래되었던 영화 <바그너>(Wagner)를 13년만에 다시 보았다. 장장 3시간 30분이 지루할 틈없이  지나갈 정도니 작품성은 물론 영화적인 재미도 상당한 수준이다. 어제밤 <바그너>를 보기 위해 저녁식사 후에 졸음방지용으로 평소 즐기지 않는 블랙커피까지 한잔 마셨다.

이미 13년전에도 감동의 도가니에 빠진 경험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또 가슴이 설레이는건 아마 이 영화의 진가를 알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세기의 명배우 ‘리차드 버튼’이 주인공 바그너 역을 맡아 3시간 30분 동안 관객의 넋을 빼놓고 그와 불륜에 빠지는 여인 코지마 역으로는 영국의 연기파 ‘바네사 레드그레이브’가 등장한다. ‘토니 펄머’가 연출을 맡은 <바그너>는 원래 1983년 영국과 오스트리아 합작한 TV 미니시리즈다.

영국에서 TV 방영 후, 대중들의 반응이 뜨겁자, 미국에서 300분짜리 영화로 편집되었고, 이후 210분으로 축소된 극장용으로 다시 재편집되었다. 1988년 우리나라 출시본은 210분 축소판이다. 당시 뉴욕타임즈에서 ‘세계 최고의 황금군단이 이룩한 불후의 명작’이라는 찬사를 보낼 정도로 이 영화는 전세계 매스컴의 찬사를 받았다. 세계적인 음악가 ‘게오르그 솔티’가 지휘를 맡았으며 런던 필하모니, 부다페스트 심포니, 비엔나 필하모니 교향악단이 극중 음악을 연주한다.

음악가 바그너(리차드 버튼)는 드레스덴 혁명에 가담하는 바람에 스위스의 취리히로 망명을 간다. 그곳에서 작곡활동을 하다가 후원자의 아내 마틸다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는다. 이후 베니스를 거쳐 바이에른 국왕 루트비히 2세의 초청으로 뮌헨에 정착하여 작곡에 몰두한다. 나이어린 왕이 바그너의 음악에 심취하여 국정을 멀리하자, 신하들은 바그너를 교외로 추방한다.

바그너는 리스트의 딸인 코지마(바네사 레드그레이브)와 사랑에 빠지지만 그녀는 유부녀였다. 우여곡절 끝에 코지마는 남편 돈 뷔로와 이혼하고 바그너의 아내가 된다. 그후 평생동안 예술혼을 불태운 음악가이자 철학자이기도 했던 바그너는 1883년 70세를 일기로 파란만장한 삶을 마감한다. 베네치아의 수로에서 펼쳐지는 오프닝과 엔딩의 장례식 장면도 압권이다. 바그너는 음악 이외에도 독특한 예술론을 담은 다수의 저서를 발표했다.

리차드 버튼이 ‘바그너’로 빙의하여 신들린 연기를 보여 주고 있으며, 로렌스 올리비에, 프랑코 네로, 존 길거드, 랄프 리차드슨 등 명배우들이 조연으로 등장하지만, 210분으로 편집이 된 관계로 극중 비중은 많지 않다. <바그너>에 자극을 받은 밀로스 포먼은 바로 모차르트의 일대기를 다룬 <아마데우스>의 작업을 시작했다고 한다. 시인 리히텔은 '아폴로의 신은 오른손에 시를, 왼손에 음악을 가진 천재를 기다리고 있다’라고 썼는데, 바그너는 그 예언을 적중시킨 음악가였다고 한다.